인도 북부의 평원에서 히말라야를 바라보던 고대 철학자 키플링은, “저 산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신이 거주하는 성역이다”라며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표현했다.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와 티베트의 접경지대에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보다 훨씬 높은 수백 개의 고봉으로 이루어져 있다.대부분의 고개가 해발 4,500미터에서 6,000미터 대에 형성되어 있어, 다른 지역의 산이 끝나는 고도가 히말라야에서는 등반이 시작되는 지점이 되곤 했다. 수 세기에 걸쳐 인도와 티베트의 광활한 대지는 지도의 공백지대로 남아 있었다. 약간의 유목민과
알프스alps라는 단어는 여러 사전적 의미를 떠나 산과 관련된 모든 주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서구 문명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원시 시대와 지중해 시대에는 유럽의 자연적인 성벽 역할을 했고 한니발이나 나폴레옹 시절에는 세계의 지도를 바꾸는 정복자의 지름길이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정치적인 역사 이외에 알프스는 사람과 영혼이 함께 개척하고 새로운 변방에 대한 도전,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지와 두려움의 극복, 모험에 따른 희생과 고통을 기록하는 근대등산운동의 발상지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2세기 전만해도 유럽
마터호른이 초등되면서 알프스 황금시대의 초등 경쟁은 막을 내리고 새로운 등산의 시대가 열렸다. 마터호른 초등 과정에서 발생했던 대참사로 인해 등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식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한정된 지역에서 소수의 클라이머들이 등반활동을 했지만, 1865년 이후에는 유럽 전역에서 최고의 스포츠로 각광을 받으면서 놀랄 정도의 수준으로 확장되었다.영국의 더알파인클럽은 1857년 창립 당시 회원이 28명이었지만 1875년에는 10배로 늘어났고, 이 새로운 스포츠에 대한 유혹과 열기는 해마다 국적이 다
루디야드 키플링이 말하기를, “숨겨져 있는 산을 찾아 나서라. 가서 그 산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오라. 잊혀졌지만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 무엇을 발견하리라.”그래서 많은 탐험가와 등산가들은 혼자서, 또는 몇몇이 그룹을 지어 이 지구상의 오지와 고산 탐험에 나섰다. 그들은 알프스의 빛나는 바위와 얼음의 벽, 북미 대륙의 거친 산맥과 코카서스, 안데스,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서 수천 마일을 탐사해 나갔다. 그들은 남극과 북극의 정상을 찾아냈고 지구 곳곳을 뒤져서 초등반을 시도해 왔다.어떤 이는 정상에 올랐고 어떤 이는 그러지 못
이 책은 1865년 에드워드 윔퍼가 초등한 마터호른 시절부터 찰스 에반스가 1955년 초등한 캉첸중가 시대까지 활동했던 등산가와 등반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다. 당시 등산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데 앞으로 10회에 걸쳐서 알프스와 로키산맥, 안데스, 아프리카, 알래스카, 히말라야 등의 험지를 종횡무진하며 깨달은 등산의 본질과 의미, 산에서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산을 향한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소개한다.“해가 지면서 붉은 노을이 티베트의 산록을 빠르게 물들인다. 한 승려가 초모랑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대자연의 장엄
1632년, 네덜란드 항해사인 잔 카스텐츠가 적도 오른쪽에 있는 뉴기니의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정글숲에, 눈을 하얗게 이고 눈부시게 돋보이는 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자 많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었다. 결국 그의 이름을 따서 산 이름을 지었지만 이 산은 이국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오지의 특별하고 신비스런 기운이 있었다.습지와 조밀한 정글숲으로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이 지역은, 아직도 식인食人의 풍습이 남아있고 카스텐츠는 등정이 안 된 채로 입구까지만 접근이 허용된 까다로운 산이었다. 카스텐츠 위성봉 중의 한 봉우리를 1937년
1980년 파타고니아의 티에라 델 푸에고를 탐험하던 윌리엄 홀게이트(저자)는 우연히 중앙아시아의 지도에서 아무런 표시없이 백색으로 남아있는 지역을 발견한다. 중국의 신장주와 티벳에 둘러싸여 자연적으로 고립된 아르카 타그Arka Tagh 산군이 그것이다. 아르카 타그는 북쪽으로 신장의 타클라마칸사막, 남쪽에 티벳의 창탕고원, 동쪽은 차이담의 소금벌판과 늪지대, 서쪽에는 쿤룬고원이 가로막아 난공불락의 성곽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무인구無人區(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다.UFO가 나타나고 예티Yeti의 발자국이 발견되고 핵실험도 있
“2차 대전 후 히말라야에 몰아쳤던 국가적인 차원의 대규모 원정대의 목표는 정상 등정에 있었다. 이로 인해 등반이 제공하는 모험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가치는 무시되었고 변질되었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만으로 오르지 않고 산소보조 기구와 장비, 약물에 의존하는 등반가는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를 되풀이 했을 뿐이다.산소마스크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장벽의 역할만을 할 뿐이다. 공정하고 순수한 방법과 수단을 갖고 오르는 에베레스트, 이것만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 참된 의미의 등반 행위다. 산은 너무나도 본질적이고 궁극적
1924년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조지 말로리의 시신이 1999년 발견되면서 남겨진 의문은, 등반 파트너였던 샌디 어빈의 존재였다. 그리고 카메라와 같은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 못해 그들의 등정 여부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2001년 3월 20일, 에릭 시몬슨을 대장으로 한 아홉 명의 ‘말로리ㆍ어빈 탐사대’ 대원은 에베레스트 롱북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이들은 1920년대의 영국팀 고소캠프와 1960년과 1975년의 중국팀 고소캠프를 집중 추적하면서 새로운 장비들을 다량 발견했다.그러나 말로리와 어빈의 등정을 증명할만한 결정
1992년 봄, 빅터 선더스는 이사를 준비하던 중에 절친한 자일파트너인 앤디 판쇼가 등반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선더스와 판쇼는 많은 날을 함께 등반했었고 정신과 육체가 이격될 정도로 술도 많이 마셨었다. 치과의사였던 판쇼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고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갔는데 선더스가 한동안 방황하는 어려움을 겪었다.그러던 중 크리스 보닝턴이 인도-영국 판치출리 합동원정대에 선더스를 초청했다. 판치출리 산군은 인도의 쿠마온히말에 있는 6천 미터급의 고산지역으로 문명세계와는 철저히 차단된 곳이다.
[호경필 전문위원] 프랭크 스마이드는 세계대전을 거치며 알프스와 히말라야에서 괄목할만한 등반들을 이끌었다. 단독등반을 선호했지만 그레엄 브라운, 디렌퍼스, 에릭 십튼 등과 자주 팀을 꾸려서 등반했고 난이도와 고도를 최우선의 등반 가치로 삼았다. 1920년대에 스마이드가 알프스에서 개척한 루트들은 아직도 많은 클라이머들이 도전하는 고전적인 루트가 되었으며, 1930년대에 에베레스트와 캉첸중가, 카메트 등에서 이룬 개척 등반들은 그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성과였다.스마이드는 등산을 직업으로 삼아 성공한 첫 번째 알피니스트로 통한다.
[ 호경필 전문위원] “1995년 5월 1일, 스코틀랜드의 앨리슨 하그리브스는 여성 최초로 산소와 셀파의 지원없이 단독으로, 에베레스트 북릉을 통해 등정에 성공했다. 3개월 후 그녀는 역시 같은 방식으로 K2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다 갑작스런 폭풍에 희생되었다.그녀가 깎아지른 절벽의 공포와 죽음의 지대에서 얻은 자유와 성취, 그리고 그 꿈을 좇는 열정 가득한 여성, 결혼생활의 불화와 갈등으로 파탄을 맞은 아내, 이혼 후 아이들과의 생활을 위해 생계수단을 확보하고 경제적인 자립을 해야 하는 엄마의 직업은 전문등반가였다. 앨리슨이 계획
1960년에 히말라야의 마셔브룸을 초등정하고 1963년에는 에베레스트 서릉을 초등정했던 미국의 윌리 언쏘울드는, 1949년 인도 북부지역을 트레킹하면서 난다데비(7,816m) 봉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딸을 얻게 된다면 이름을 ‘난다데비’로 짓겠노라”고 다짐했다.1976년, 난다데비 초등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인도-미국 난다데비 합동원정대’가 조직되었고, 아버지 윌리와 딸 난다데비 언쏘울드(이후 데비)는 원정대장과 대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평소 자신의 이름과 동일한 난다데비 산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가득
‘바이 페어 민즈 by fair means’는 순수하고 공정한 방법과 수단으로 산을 오르려고 하는, 순수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등산가들에게는 절대적인 덕목이다. 알프레드 머메리와 헤르만 불, 라인홀트 메스너는 이 철학의 선구자들이다. 이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29세의 괘란 크롭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궁극의 절대 고도 0에서 8,848m의 에베레스트에 도전한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도전하는 등산가에게 에베레스트의 진정한 높이는 8,848m가 아니고 6천미터 급의 고산에 불과하다. 산소마스크는 인간의 순수한 본성과 자유 의지를 가로 막는 벽이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돌로미테 산군에서 자란 라인홀트 메스너(1944년생)는, 1960년대에 이미 돌로미테의 석회암 거벽들을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섭렵했다. 메스너는 알프스에서의 경이로운 등반 기록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최고의 무대인 히말라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를 기다렸다. 그 기회는 1970년, 독일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의 대장이었던 칼 헤를리코퍼 박사가 메스너를 초청하면서 성사됐고, 마지막 단계에서 대원 한 명이 탈락하면서 동생인 귄터가 원정대에 합류하게 되었다.이번 원정대는 4천미터나 되는 루팔 벽을 공략하기